"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이 역사소설에 덧붙인 소설가 김훈의 말입니다. 1948년생인 작가 김훈은 '더 이상 미루어 둘 수가 없다는 절박함'으로 가슴속에 오래 담아두고 있던 이야기를,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글로 붙잡았다고 합니다. 적의 법정에서 스스로의 직업을 포수로, 무직으로 소개한 한 인간의 육신이 거쳐간 길을 이 소설은 따라간다고 생각됩니다.
책이 시작할 때는 이토 히로부미 이야기도 나옵니다. 기본적으로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해서 우리에게 외교권을 빼앗아간 어찌 보면 우리 국권이 피탈되게끔 앞장섰던 조선의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저격에서 죽였다는 걸 우리가 일반인들이 많이 압니다. 그래서 저는 책의 초반부, 이토와 안중근을 같이 다루는데, 처음 출발할 때 이토가 당시 대한제국의 황태자였던 이은을 일본에 데리고 간 이야기, 다시 조선에 와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과 부산을 여행하고 개성, 즉 옛날 고려 500년의 수도였던 곳을 여행한 이야기 또 황해도 안악의 안중근의 고향에서 젊은 안중근이 가족, 형제, 마을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고 사냥을 하고 이런 이야기들까지는 솔직히 집중이 잘 안 됐습니다.
그런데 안중근이 당시 외교권이 빼앗기고 1907년에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한일 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는 등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이토에 대한 안중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치솟는 분노감,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시기부터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안중근이 이토를 인식해가는 세밀한 과정
막연하게 이토를 죽여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은 안중근을 잘 묘사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기에는 안중근이 내가 이토의 동양 평화론을 한때 지지했다고 알려지고, 이토는 조선과 청나라와 일본의 황인종 젊은이들이 힘을 합쳐서 러시아 침략 세력의 서자라고 했고 이 부분에 안중근이 동조한 부분이 있었으나 막상 너희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난 다음에 아까 말씀드린 외교권을 빼앗고 고종을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도저히 용서 못할 일을 이토가 한 것이죠. 그래서 내가 이토에게 속았으니 결자해지 하는 심정으로 그 이토를 죽이겠다고 하고 단지회 조직하고 약지를 직접 잘라서 손도장 찍었다는 이야기까지를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그냥 뭔가 막연하게 깊숙이 있는 이토에 대한 분노감 때문에 그 이토를 만나러 가는 안중근을 그려냅니다. 그 과정을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묘사를 해두었습니다.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이토를 죽인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한번 정리를 해보자면, 하얼빈 만주 한복판입니다. 그런데 안중근은 당시 황해도 안악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하얼빈에 이토가 온다는 걸 알고 하얼빈으로 건너갔고 이토 히로부미는 도쿄에서 시모노세키까지 옵니다. 그런데 이토 히로부미가 옮겨가는 그 루트 역시 참 역사적으로 복선이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토 히로부미가 시모노세키까지 왔다고 하는데 시모노세키는 청일전쟁이 끝나는 조약이 체결된 곳입니다. 청나라의 이홍장과 일본의 이토가 만나서, 청나라가 전쟁에서 패했으니 일본이 대만과 요동을 받겠다고 한 곳이지요. 이걸 일본이 얻게 되니까 그게 불만이었던 러시아가 프랑스 독일을 끌어들여서 3국 간섭을 하면서까지 리순과 다렌을 빼앗아 가니 다시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서 러시아를 패퇴시키고 리순, 다렌을 얻었던 것이죠. 그래서 도쿄에서 출발했던 이토 히로부미가 시모노세키까지 갔다가 배를 타고 리순으로 가는데, 이 리순과 다롄은 이토의 도시라는 것입니다. 그 리순에서 출발해서 지금의 선양 봉천 그리고 장춘을 거쳐서 하얼빈까지.. 그래서 그 하얼빈에서 안중근과 이토가 만나게 됩니다.
소설이지만 인물에 대한 완벽한 탐구
그 과정을 정말 깊게 너무너무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작가가 안중근과 이토에 대한 연구를 완벽하게 한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완벽한 연구 속에서 나름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책을 읽어가는 독자들에게 긴장감을 주게끔 그렇게 쓴 책인것 같습니다.
제목이 왜 하얼빈이었을까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하얼빈에서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안중근은 실제로 하얼빈에서 의거를 치르고 리순까지 잡혀가서 그곳 감옥에서 형을 집행당합니다. 안중근이 하피 에프 의거를 일으켰던 건 1909년 10월 26일이었고 안중근이 사형을 당한 건 1910년 3월 26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의거를 치르고 잡혀서 리순까지 내려오는 그 길은 정확하게 앞서 말한 이토가 리슨에서 하얼빈까지 기차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입니다. 아이러니 하지요? 그래서 책의 제목이 하얼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읽다보니 저도 같은 한국인으로서 안중근이 얼마나 큰 인물이었는가, 그런데 그런 큰 인물을 저 역시 파악하기 힘들고 그간에 오염된 정보들로 꾸며졌던 안중근을 속속들이 보게 되니 마음이 새로웠습니다. 우리가 무조건적인 반일 감정만을 가질 게 아니라 우리 선조들께서 당시 빼앗긴 나라, 그 울분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서 의거를 치렀던 여러 독립지사들을 다시 한 번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완벽에 가까운 인물탐구를 통해 비춰낸 감정선들을 읽으시면서 금새 파악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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