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책 제목만으로는 한탄 주의에 빠진 파친코 게임장에서의 인간 군상을 다룰 것 같지만, 이 소설은 파친코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도 없고 게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표지에서 보이는 박혀 있는 핀들은 규정된 법과 질서에 의해 점철되는 인간 사회를, 그 사이를 흘러 다니는 핀볼은 개개인으로 정해진 노트를 타고 흘러내려야만 메인홀에 들어갈 수 있는 이 게임은 욕망의 기계로 상징화됩니다. 권한을 쥔 자에 의해 승률 조작이 가능한 낮은 확률의 게임이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이 게임에 참여합니다. 억압과 차별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일본 사회에 자리 잡은 사람들처럼 말이죠. 소설은 시대적 상황에 따른 정치와 경제 법과 질서라는 기준에 의해 요동치는 삶을 담고 있습니다. 비단 일본 사회는 재일 동포들만의 이야기로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특정 인종, 계층 지옥으로부터 내몰린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분류의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4대에 걸친 긴 이야기
4대에 걸친 긴 이야기는 부산 영도에서 일대인 김홍과 양진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고 서로 연결됩니다. 선자의 어머니 양지는 1910년 경술국치로 토지 소유권과 관행적으로 인정되던 임차권이 부정당하며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된 아버지에 의해 섬 반대편에 살고 있는 훈이에게 시집보내어집니다. 선 반대편의 기문은 선자의 아버지로 이 책 전반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가 가진 구승구 계열은 유전으로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양쪽 모두에 동화될 수 없는 후손들의 분열적 삶과 한국의 상황으로도 이해됩니다. 그의 사려 깊음은 삶에 대한 진중한 자세를 뒤틀린 한쪽 발목의 기억은 내디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그를 휘청거리게 하지만 흔들림을 리듬으로 바꿀 줄 아는 강한 의지의 상징으로 생각됩니다.
2세대는 훈이와 양진 사이에서 태어난 딸 선자입니다.
작은 체구의 훈이를 닮은 그녀는 선입견을 딛고 장사를 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강한 인물입니다. 선자는 영도에서 홀로 장을 보러 나갔다가 일본 학생들로부터 농을 당하게 됩니다. 우연히 이 현장을 지나치던 고한수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고 고마움을 느낀 선자는 고한수와 가까워지며 그의 아이를 갖게 되지만 일본 오사카에 아내와 자식이 있다는 고백을 듣게 됩니다.
결혼을 생각했던 선자는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고는 그 자리에서 고한수에게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원하는 건 뭐든 해주겠다며 공안수는 선자를 회유하지만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걱정의 나날을 보내던 선자는 아이에게 이름을 줄 수 있다는 백기사의 제안으로 사역의 길을 나서는 그와 함께 오사카로 이주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고한수는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온 인물로 전쟁 같은 사건이 자신에게 미치게 될 영향을 계산하는 현실적 인물로 나오며 선자 일생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부산 영도에서는 생산 중개인으로 흥정 없는 깔끔한 일 처리에 사람들은 칭찬하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야쿠자의 대릴 사위로 장인의 일본 성을 물려받습니다. 그에 대한 선자의 첫인상은 깔끔함과 새하얀 옷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고한수에 대한 선자의 이런 첫인상은 드라마 스틸컷으로도 선공개되기도 했었죠.
3대는 선자의 자녀 노아와 모자수입니다.
첫째 아들 노아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물로 늘 단정한 옷차림과 머리를 유지하는 모범생입니다. 냄새나는 조선인이라는 선입견을 벗고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속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는 않습니다. 성인이 된 후 고한수의 아들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며 자신은 나쁜 피를 이어받은 열등 종족에 저주받은 사람으로 여깁니다. 백기 사과 같은 고귀한 조선 사람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인이라는 편견을 깨고 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싶었던 노안은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탈출합니다. 선자와 백이삭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 모자수는, 모범적 시민이 되고자 하는 노아와는 정반대의 인물입니다. 옷차림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자신에게 편안한 상을 고집하죠.
고등교육과 존경받는 직업보다 경제적 성공을 요망합니다. 16살에 파친코를 운영하는 고로 사장을 만나 일을 시작하고 기계 만지는 기술과 관리자로서 많은 것을 익힌 후 요코하마의 여러 개의 파친코 가게를 가지며 경제적 성공을 이룬 인물로 나옵니다.
4대는 모자수와 유미 사이에서 태어난 솔로몬입니다.
요코하마의 국제학교를 거쳐 미국의 대학에 입학하며 시민권자 피비를 만납니다. 졸업 후에는 영국계 은행의 일본 지사에 취직되며 돌아오지만 불미스러운 일을 도모했다는 의심으로 회고당합니다. 솔로몬은 피비와 결혼하게 되면 미국 시민으로 차별받는 삶이 아닌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이를 거부하고 아버지 모자수에게 사업을 이어받겠다는 의사를 전달합니다. 아버지 모자수는 자신이 바랐던 삶을 저버리는 아들에게 파친코 사업의 부정적 인식에 대해 설명하지만 솔로몬은 '아버지는 정당한 방식으로 사업을 키워오지 않았냐'며 의사를 굽히지 않습니다. 14살 이후, 3년마다 생일날 관청을 찾아 푸른 잉크를 묻힌 지문을 찍어야 하는 차별을 겪으면서도 솔로몬은 자신을 거부하는 일본 사회의 동화를 다시 꾀하는 것입니다. 그에 주목할 만한 인물로는 선자 인생 동반자로 나오는 경희와 솔로몬의 첫사랑 하나가 있습니다. 일본으로 상징되는 매혹적인 캐릭터의 하나는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 칭합니다. 일본 주류 사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재일동포들의 현실을 솔로몬에게 각인시키지만 낮은 자존감으로 치유할 수 없는 병을 얻게 되며 죽음에 이릅니다. 경희는 선자에게 하나는 솔로몬의 선택에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각 인물들의 에피소드는 선으로 연결되며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30년의 긴 시간을 연결 짓는 흥미로운 디테일
캐릭터가 갖는 상징성 외에도 저자가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할애한 만큼 현실과 합치되는 디테일은 흥미롭습니다. 우선 소설의 주 배경지인 이카이노는 현재에도 재일동포 최대 밀집 지역으로 돼지를 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6,7세기 백제인들이 이 부근의 나이와 포구에 이주하며 첫 인연을 맺은 곳으로 1920년 일제강점기 제방 공사를 위해 동원된 조선인들에 의해 큰 규모의 마을이 만들어진 후, 4.3 사건으로 인해 1만여 명 이상의 제주인들이 난민으로 도피했던 피난처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는 노아의 생부, 고한수의 고향이 제주이고 노화를 받아준 산파도 제주 출신으로 나옵니다. 모자수에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제안한 고로 사장의 어머니도 제주의 해녀 출신입니다. 한국 내 정치적 상황으로 탄압받은 제주민들은 살기 위해 영토를 떠나 미국에서 새롭게 태어나지만 이곳마저도 이들은 쉬이 받아주지는 않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이삭의 형, 요셉이 돼지와 조선인만 살 수 있는 잘못 만들어진 곳으로 자신의 집에 머물게 된 이삭과 선자에게 이카이노에 대해 말해주는 부분이 나옵니다.
저자가 인터뷰에서 밝힌 파친코 산업의 규모는 일본 자동차 산업의 두 배로, 2011년 한일경제협회에 따르면 30조 엔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의 제재 조치로 규모가 축소되었다고는 하지만 2016년 마루안의 자료에 따르면 산업 규모는 21조 엔, 관련 종사자는 24만 명으로 그 규모가 상당합니다. 덧붙여 소설 속 모자수와 겹쳐지는 일본 파친코 업계 1위 마루안을 창업한 재일동포 한창훈은 경남 출생으로 1947년 일본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형이 자신을 부르자 16살에 일본 시모노세키로 넘어갑니다. 이 부분은 선자 남편 이삭이 형 요셉이 있는 오사카로 건너가는 경로와 닮아있습니다.
일본 사회 내의 재일동포들의 처우를 대변
사회 진출 기회가 가로막힌 상황 속에서 삶을 지속하기 위한 일들을 해내며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하지만 과거부터 존재해 왔던 부정적 시각은 주류 사회의 진입의 어려움을 보여줍니다. 저자도 인터뷰에서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와 일본 파친코 산업을 비교하며 변하지 않는 일본 사회를 말합니다. 소설에서 솔로몬을 이용해 목적을 달성한 상사 가재의 변을 빌어 이곳은 살기 안전한 곳이지만 공룡마을로 멸종된 곳으로 묘사합니다. 포용을 거부하는 그들의 폐쇄성은 다양성으로 분출될 수 있는 역동성을 강구할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 마지막의 손자는 오사카에 있는 이상의 무덤을 찾아 아이들의 사진이 담긴 열쇠고리를 묶고 경이가 있는 집으로 향합니다. 솔로몬이 14살 생일에 관청의 지문을 등록하며 남겨졌던 손톱 아래에 푸른 잉크 작업과 손자가 사진을 묻으며 손톱 아래 낀 흙의 의미가 대조적입니다.
과거와는 다른 이유로 유목적 삶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정체성이 개인의 의지와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 것이겠지요. 이제는 우연히 획득하게 되는 정체성을 빌미로 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소설의 첫 문장이 힘 있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이런 변화에 리듬을 타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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